이들은 일반적인 긴장되고 단호한 표정을 지닌 본능 중심의 사람들 중에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게 맺기를 바라기 때문에 다른 본능 중심의 사람들과는 달리 온유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9번 유형은 평화롭고 태평한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외적세계와 내심의 평온을 찾는다. 변화는 이들에게 겁나는 자아의식의 상실감을 가져오기가 쉽기 때문에, 9번은 외부 세계의 변화를 두려워한다. 9번은 자연환경이나 가정 및 사회적 환경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아의식과 자기 가치를 수립해 나간다. 개인, 가족 또는 동료관계가 변화할 때, 또는 사건들로 말미암아 인생환경이 바뀔 때 9번은 긴장에 사로잡혀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기를 원하게 된다. 9번들은 자기 비하적이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개인적 욕구들을 사양한다. 분노를 터트리면 평온이 깨지기 때문에 9번들은 자기 자신의 욕구를 거부하고 욕구 자체를 느끼려 하지도 않는다. 9번들은 무감각해짐으로써 고독의 아픔을 달래며, 소중히 여기는 다른 사람들의 소망에 영합하기 위하여 인생을 쥐고 흔들고 싶은 타고난 욕망까지도 포기한다. 너무 심하게 악용당하거나 소중한 사람들과의 상호관계가 지나친 갈등을 빚을 때와 같이 너무 괴롭힘을 당하게 될 경우 분노는 폭발하고 만다. 9번은 상상의 세계를 통하여 모든 것이 평화롭기만 한 공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외적인 현실이 긴장을 많이 일으킬수록 9번들은 더욱 더 자아의식을 잃게 되고, 더욱 더 충동적으로 공상의 세계에 틀어박히게 된다. 게으름, 비독단성,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 등은 9번의 약점이다. 9번들은 매우 허약한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때에는 9번들은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으며,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잊고 그 사람과 일체가 되는 것을 통하여 자신의 자아의식을 찾으려 한다.
9번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을 찬찬히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 9번들은 몸소 자연이나 동물들과 사귀며, 그렇게 하는 데에서 기력과 위안을 얻게 된다. 삶의 현존 속에 속하게 된다(칼라한).
이들의 생존의 문제, 즉 본질적인 두려움은 세상을 살면서 "세상과의 연결을 잃는 것, 혼자되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즉, 이들은 본능 중심이 중요시하는 ‘세상과 자신의 경계의 유지“에 있어 다른 이들과의 경계의 고리가 끊어지면 안 된다는 본질적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들의 생존에 대한 욕망은 세상과의 경계의 끈을 유지하기 위해서 ‘평화,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관계의 끈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의견에
수용적이고 남을 말을 들어주고 조화를 중요시하는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9번 유형의 사람들은 모든 일과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포용하고 믿을 줄 알며 타인을 편안하게 한다. 대체적으로 창의적이고 낙관적이며, 남들을 잘 지지하며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갈등이나 긴장이 오면 자신의 내면이 혼란스러워 지는 것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9번 유형들은 모든 일이 불화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원하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남들과의 좋은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하기도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결점을 숨기고 문제를 단순화시키며 속상한 일은 무조건 축소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피함과 외고집이 문제가 된다.
평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상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없이 조화롭게 지내는 모습은 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9번 유형들은 좋은 것이 좋다는 평화스러움만을 고집하는 집착에 빠지게 되면, 결국은 자기의 존재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자기망각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9번 유형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냉철히 판단하며, 자신이 행동하는 본능의 에너지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자신이 가진 중재하는 힘을 쓸 때 이들은 타인과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9번 유형들은 원하는 연결이 유지된 상태와 관련해 "이름"에 관한 글을 생각해 본다.
이름에 대하여(안젤름 그륀)
당신의 부모는 당신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고, 당신이 출생했을 때부터 이 이름을 불러 주었다. 당신의 이름은 당신 인격의 본질을 구성하며, 당신은 이름을 통해서 당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당신은 그것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을 부른 것임을 알아차린다. 바로 그 유일한 인간이기에 당신은 소중하다. 당신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이 이름으로 다른 사람과 구별된다. 당신은 다른 것과 대체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당신의 이름 안에는 당신 인생사 전체가 모여 있다. 당신부모가 이 이름으로 불러 주었다. 당신은 살아가면서 고유의 사고와 감각을 통해서, 당신만의 특성으로 이름을 채웠다. 친구들이 당신 이름을
부르는 것,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당신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당신의 이름은 유일하며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당신을 지명하는 것이고, 누구와도 혼동할 수 없는 당신의 인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이름을 어떻게 체험하는지는 이 이름으로 우리를 불러주는 사람들에게 달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름을 부를 때는 그들의 관심과 사랑이 담겨 있다. 나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 나의 숙모와 삼촌이 이름을 불러 주던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들이 부르는 이름 안에는 사랑이 짙게 녹아 있고, 내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이 사랑을 전해 받는다. 이제는 어쩌면 당신의 여자 친구나 남자친구, 당신의 부인 혹은 남편이 새로운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채우게 될 것이다. 그때 당신은 이전에 당신의 이름과 연결 짓지 못했던 새로운 무엇을 깨닫게 된다.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모든 이들은 당신의 있는 그대로 부른다. 그들은 당신의 이름을 당신과의 관계, 감정, 사랑과 관심, 때로는 선입견과 원망으로 채운다. 그들의 선입견은 잊어라. 사람들이 채워준 사랑과 애정만을 기억하라. 당신 이름을 스스로 천천히 그리고 크게 불러
보라. 당신의 이름을 맛보고 즐겨라. 어떤 맛이 나는가? 어떤 느낌이 남는가? 당신 안에 어떤 영상들이 떠오르는가?
당신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도 특별한 방식으로 내면의 빛을 보여주는 하나의 프리즘이다.
“ 네가 있으니 좋다. 네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너는 네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 너는 유일한 존재이다. 나는 네 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러니 너도 너를 사랑해라. 너 스스로 네 이름을 부르고, 네가 드러낼 수 있는 모든 애정을 다해 네 이름을 채워라.”
당신의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 이름의 ‘감미로움’과 좋은 뒷맛, ‘사랑스러움’을 느껴라. 당신의 이름을 통해서 사람들이 당신에게 보여주는 사랑을 만나고, 당신의 이름에는 사랑이 농축되어 있다. 당신의
이름을 당신의 사랑과 애정으로 채워라. 자신의 이름을 사랑스럽게 부름으로써 당신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대하고, 자신을 수용한다. 자신의 이름을 부드럽게 부르면, 자신에 대한 사랑도 함께 자란다.
당신의 이름은 당신을 당신의 가장 깊숙한 내면으로 인도한다. 이름을 통해서 당신은 온전히 자신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내린 모든 판단과 이름들이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거기에서 당신은 당신의 참된 자아, 내면에 새겨진 왜곡되지 않고 때 묻지 않은 본질을 만나게 된다. 온전히 자신이 되는 그곳에는 사랑과 자비가 가득하다. 당신은 자신과 온전한 조화를 이룬다. 당신은 평화와 생기 그리고 자유를 체험한다. 당신은 구원받고 해방되어 깨끗하고 순수하며 온전하고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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