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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글쓴이 : KEEC   2013-03-13 17:04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오늘 용서하십시오.
용서하지 않으면 당신이 쓰러지기 때문입니다.
미움은 내 마음과 몸을 무엇보다 빠르게 폐허로 만듭니다.
용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앞에서만 보다가 뒤로 돌아가서 보고 위에서만 보다가 아래로 내려가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이 보이고 용서의 실마리도 찾게 됩니다.
어떤 사건도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생각도 존재보다 귀하지 않습니다.
어떤 과거도 현재보다 소중하지 않습니다.
분노도 필요하고 갈등도 있어야 합니다.
아픔도 겪어야 하고 어느 땐 외로움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면 힘들어서 안 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을 소중히 여긴다면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하십시오.
용서는 어렵지만 꼭 해야 하는 숙제입니다.

이제 두 팔을 벌려 서로를 안아 주어야 합니다.

글ㆍ정용철
신비의 숫자 (keec) 글쓴이 : KEEC   2012-08-27 13:11

´신비의 숫자 142857´ 비밀은?스팟뉴스팀 (2011.06.20 20:42:40) 신비의 숫자 142857이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142857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신´에서 소개된 숫자로 곱하거나 더하는 등 연산을 하면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142857에 1부터 6까지의 숫자를 곱하면 142857, 285714, 428571, 571428, 714285가 나오는데 이 숫자는 142857의 숫자가 반복된 것이다.

또한 숫자 142857을 두 자리씩 쪼개서 더하면 14+28+57=99이고, 세 자리씩 쪼개 더해보면 142+857=999로 9가 반복되며 142857을 제곱하면 20408122449가 되는데 이를 20408과 122449로 나눠서 더하면 142857이 된다.

신비의 숫자 142857의 원리는 바로 무한소수이다. 무한소수는 소수점 이하의 같은 숫자의 배열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이런 사실을 접한 네티즌은 "수의 세계는 신기하구나", "이런 걸 알아내는 사람은 누구야", "베르베르는 어떻게 알았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데일리안 = 스팟뉴스팀]

1428571는 에니어그램의 분열의 방향이고 반대방향인 1758241는 통합의 방향이다.
깊은 강(深い河) –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걸작 - 양재오 글쓴이 : KEEC   2012-08-27 13:11



깊은 강(深い河) –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걸작

글. 리쟈통(李家同) / 번역.양재오


나는 엔도 슈사쿠의 소설을 좋아한다. 세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일본 작가인 그가 쓴 소설들은 어렵지 않아 누구에게나 쉽게 읽힌다.

엔도 슈사쿠가 근래에 쓴 소설이 있는데, 영어로 번역된 그 작품의 이름은 Deep River이다. 아직 중국어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때인지라, 나는 그 작품의 이름을 일단 큰강(大江)이라고 옮겼으며, 장차 누군가 그 작품을 중국어로 번역하게 될 때, 아마도 그 제목을 달리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단, 이 책이 이미 오래 전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번역된 책 제목이 ‘깊은 강’이므로 이후 그 책명을 ‘깊은 강’으로 옮긴다.-역자 주.)

지난 달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에 출장을 갔다가 가톨릭(천주교) 서점에 들어가서 ‘깊은 강’ 한 권을 샀다. 내가 묵는 호텔 숙소에서는 달리 할 일이 없는지라, 그날 저녁에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른바 그 책에 등장하는 깊은 강이 가리키는 것은 인도의 갠지스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에는 어느 일본인 단체 여행객이 인도를 여행하게 되었고, 그 일행 가운데 여자 한 사람이 자신이 대학 학창생활 시절 알고 지내던 남자 동창생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가 찾아 나선 남자 동창생은 천주교 신부가 된 뒤, 인도로 갔다. 이런 연고로 인도 여행을 하게 된 그녀는 일찌기 마음속으로 경외하던 그 남자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몇몇 천주교 성당에서 봉직하는 신부들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그가 있는 곳을 알려 주려고 하지 않는다. 마치 그 신부에 대하여 굳이 말 할 가치가 없다는 듯 처신하며, 때로는 마치 그가 일찌기 이미 교회를 떠난 듯 한 암시를 주기도 한다.

사실 그는 여전히 신부로서 살고 있으나, 다만 교회 안에 머무르지 않을 뿐이다. 그가 실제로 거주하는 곳은 캘커타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다. 그가 살고 있는 지역 주변은 모두 인도의 계급제도(카스트) 가운데서 천민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녀가 그를 방문하던 때 그는 부재 중 이었고, 그녀는 그곳의 빈곤한 정경을 보고는 매우 놀랐다. 그곳에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 숙소의 전화번호를 남기고, 그녀는 서둘러 그 곳을 떠났다.

그 신부가 전화를 하여, 그녀가 묵고 있는 곳이 어느 호텔이냐고 묻는다. 그가 그녀가 묵는 곳이 호화로운 관광호텔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찾아 왔는데, 그 때 그가 입고 있는 옷은 해어지고 남루하여서 여타 천민들과 흡사했다. 이런 까닭에 호텔 경비원은 그가 호텔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결국 그들은 호텔 밖에 있는 긴 의자에서 만나게 된다.

그녀의 과거 대학 동창인 그 신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그는 평소에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미사를 거행하고 기도를 한다. 이런 점에서는 다른 신부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그의 주요한 일은 다른 신부와 완전히 다르다.

인도의 힌두교도들 입장에서 보면, 갠지스 강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강이다. 절대 다수의 인도 사람들은 평생 한 번은 꼭 이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기를 바라는데, 이와 같은 행위는 그들 영혼에 특별히 유익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실행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가난하여 오갈 데도 없고 돈 한 푼 없는 이들은 갠지스에 가기 위하여 기나 긴 도보 여행을 하여 캘커타에 모여든다. 그것은 그들이 장시간에 걸친 도보여행으로 피곤하고 지쳐서, 갠지스 까지 곧바로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신부는 이와 같은 사람들을 알게 된 뒤, 그들 가운데 갠지스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을 자신의 등에 업고 갠지스로 간다. 

사실 이 이야기 안에는 모종의 상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곧 갠지스 강은 다함없는 하늘과 같은 무한한 사랑을 상징한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화장하고 난 뒤 그들의 유골은 모두 갠지스 강으로 들어간다. 마치 하늘과 같다. 곧 하늘은 부자도 받아들이고, 가난한 자도 받아들인다. 그 신부가 하는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한평생 했던 일을 재연하는 것일 뿐이다. 엔도 슈사쿠는 그가 쓴 다른 소설 가운데서 특별히 예수 생애의 최후를 묘사했는데, 그 소설 가운데서 예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청한다. 왜냐하면 그는 온 인류의 고통을 짊어지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 신부가 가난한 사람을 등에 업고 갠지스로 가는 것이 바로 예수가 했던 그 일과 같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예수께서 그들에게 준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하고, 나아가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야 한다. 인도 사람들에게 있어 갠지스는 바로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신부가 이교도를 등에 업고, 이교도가 내심 바라는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 좀 이상해 보이지 않는가? 이 점과 관련하여 나는 인도 캘커타에서 테레사 수녀가 세운 임종자의 집이 떠오른다. 그 임종자의 집에는 유해 안치소가 있는데, 그 왼쪽은 불교도를 그리고 그 오른쪽은 힌두교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 유해 안치소 문 위에는 한 줄로 ‘예수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다.

엔도 슈사쿠는 분명히 테레사 수녀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소설 깊은 강에서 묘사한 그 신부와 그가 한 일들은 바로 테레사 수녀와 그녀가 한 일과 매우 닮았다. 그들은 단지 말로만 복음을 전하지 않고, 행동으로 자신들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튿날 나는 어느 대학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것이 공식적인 방문이었던 까닭에 나는 양복을 단정하게 입었다. 호텔로 돌아 올 때 문 입구에 선 경비원이 나에게 몸을 굽히고는 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도록 배려했다. 나는 호텔 로비에 들어선 뒤, 그 양쪽에 펼쳐진 큰 거울을 지나가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그 안에서 자신만만하고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때 갑자기 깊은 강에 등장한 그 신부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매우 남루한 차림의 그를 우습게 볼 것이기 때문에, 그는 호화로운 호텔 안으로 감히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면 나는 어떤가? 나는 지금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호텔에 들어왔다. 어느 날 내가 수명이 다한 뒤 (감히 그럴 자격이 되어) 천당에 간다면, 나는 부끄러워 천당 문간에 엎드려 숨을 것이다. 그 때 나는 “내 의복은 남루하고, 몸에 돈 한 푼 지니지 못해서, 천당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라고 말하겠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그 신부가 죽은 뒤, 천당 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에게 분명히 허리 굽혀 절하며, 그가 큰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사람은? 그저 어떻게든 사람들 틈에 끼어 그 곳에 따라 들어갈 수만 있어도 무척 기쁠 것이다.

엔도 슈샤쿠의 ‘깊은 강’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가장 아름답게 해석하였다. 이와 같은 책은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많든 적든 무모하게 보이거나 그들 마음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이 책은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 누구든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모두 이른바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알게 해 줄 것이다.  

깊은 강은 이미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듣기로는 이 영화가 젊은이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는다고 한다. 나이든 사람으로서 나는 어느 날 내가 감히 당당하게 큰 호텔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또 그렇게 큰 인물들과 교제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때가 되면 나는 머리를 들어 용감히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기를 늘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깊은 강이 내게 준 계시(啟示)에 대하여 감사한다.

* 원문은 李家同, 大江──遠藤周作的鉅作. 이 글의 저자 리쟈통(李家同)은 현재 지난(暨南)、칭화(清華)、징이(靜宜) 대학교 명예교수로서, 타이완에서 사회적 영향력이 가장 큰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http://blog.dreamwiz.com/bonojoy/13465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