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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대를 모욕하거든 (KEEC) 글쓴이 : KEEC   2012-08-27 11:27

구르지예프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의 할아버지의 죽음이 그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고.
구르지예프가 아홉살 때, 그의 할아버지는 어린 구르지예프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난한 사람이라 너에게 남겨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하지만 꼭 한 가지,
내가 너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이후로 내가 항상 보물처럼 간직해왔던 것이 란다.
비록 너는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기억하도록 해라.
언젠가 내 말을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잊지 말고 기억하거라.
지금 당장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잊지 않고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 의미를 이해할
날이 꼭 올 테니까 말이다.”

그의 할아버지가 구르지예프에게 한 말은 이랬다.
“만일 누군가 너를 모욕하거든, 24시간이 지난 후에 그에게 맞서도록 해라!”
24시간 후에 맞서라고? 24시간이 지나고 나면 분노는 더 이상 분노로 남아있을 수 없다.
분노는 즉각적인 분출을 요구한다. 하물며 모욕을 당한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24시간을 기다리라니?

“누가 너를 모욕하거든 혹은 너를 화나게 만들거든,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해라.
‘내일 다시 오겠다. 나는 24시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대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가 임종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미 한 약속을 깰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겠다.”
당연히 모욕을 준 사람은 이 돌발적인 상황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구르지예프는 이 상황을 두고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게 된다.

모욕을 한 남자가 옳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다시 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당신은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혹은 그 사람의 말이 전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틀렸다면, 그 말에
신경을 쓸 까닭이 무엇인가?
그의 말이 상처가 되었다면, 낱말 속에 감춰진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상처가 될 이유가 무엇인가 말이다.

이처럼 구르지예프는 같은 방식을 분노뿐만 아니라 다른 감정을 다루는 데도 활용했다.
그때마다 감정은 사라져버렸다!
구르지예프는 붓다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고지에 도달한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 놀라운 여정은 아주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되었다.
죽음을 맞고 있는 할아버지와의 약속. 그 약속이 그의 전 생애를 바꿔놓았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윤운성) 글쓴이 : KEEC   2012-08-27 11:26
“지금 여기의 진실 외면한채 허상과 욕망 좇고 있지 않은가”






한국 불교·승단 비판 '‥부처를 죽여라' 낸 도법스님
1일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 3월부터 바랑 하나 메고 지리산과 제주도, 부산을 거쳐 경남에서 메말라가는 ‘생명평화’를 길러내고 있는 탁발순례자 도법 스님이 잠시 거처인 실상사에 돌아와 한국 불교를 향해 죽비를 내려쳤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아름다운 인연 펴냄). 그는 한국 불교와 승단에 던지는 절절한 신앙고백서를 냈다. 1990년대 초 청정불교운동을 위한 불교결사체인 선우도량을 결성해 ‘제대로 된 불교란 무엇인가’를 탐구해 온 결과물이다.

“냉정하게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버리며 살고 있는가. 맛있는 음식, 편리한 생활, 감각적인 즐거움 등 탐욕에 자신을 맡겨 놓고 있지는 않은가.”

스님들을 향한 그의 일갈엔 타협이 없다. 스스로 ‘막가파’라고 한다.

“붓다 당시의 불교를 공부하면 할수록 현재 승단이 불교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바로 지금 여기의 구체적 삶 속에서 진리를 구현하도록 했지만, 한국 불교에선 내면의 무엇이나 근본 뿌리를 찾아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고 끊임없이 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붓다가 향락과 고행을 스스로 버리고 택한 중도는 정약용 선생의 ‘실사구시’와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지금 여기’를 도외시한 채 허상과 욕망만을 쫓는 관념에 대한 일갈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다.

실상사에서 주지의 ‘권위’를 벗고, 붓다의 삶에 다가서기 위해 농장과 귀농학교, 작은 학교를 꾸리고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매사를 논의하는 사부대중 공동체를 가꾼 실천가이기에 그의 말이 공허할 수 없다.

도법 스님은 승단만이 아니라 탁발 순례중에도 답답함이 밀려든다고 했다.

“온갖 계층들이 경제타령뿐이다. 가난한 사람만이 아니다. ‘저 정도면 쓰는 게 넘쳐난다’고 싶은 사람들조차 ‘부족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오직 부자 되고, 경쟁에 이기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는 환상 속에 매몰돼 가는 현실에도 그는 가차없이 죽비를 친다. 허상을 벗고 실상을 보라는 것이다.

힘의 중심 역동 (윤운성) 글쓴이 : KEEC   2012-08-27 11:26

힘의 중심 역동



힘의 중심은 구르지에프의 작업을 시작으로 머리, 가슴, 장중심으로 대별된다. 각각의 중심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듯하나 서로 역동적으로 동시에 작용된다. 즉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에고는 신체를 긴장하게 하고장중심), 따라서 자신의 진정한 개인적 특성을 대신하기 위해 정체감을 형성하게 되고(가슴), 이러한 감정성향을 강화하다보니 거짓되게 되고 따라서 그 결과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머리).
육체의 본질적 현존은 가슴을 열게하며 열린가슴은 안내와 내적인식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