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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검사 구입 및 검사욕망이라는이름의 전차(1) 글쓴이 : KEEC 2021-01-22 11:28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Streetcar Named Desire(1951) - 환상 vs 고의적 잔인함 - Vivien Leigh .... Blanche DuBois - 4W3 Marlon Brando .... Stanley Kowalski - 8번 Kim Hunter .... Stella Kowalski - 9번 Karl Malden .... Harold 'Mitch' Mitchell - 6번 Main Themes: Fantasy/Illusion, The Old South and the New South, Cruelty The Primitive and the Primal, Desire, Loneliness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시놉시스 블랑쉬(Blanche : 비비안 리 분)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미국 남부 항구도시인 뉴올리언즈에 도착한다. 명문가문 출신인 그녀는 이 퇴락한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를 하고 여동생의 좁고 허름한 아파트를 수소문해 찾아간다. 여동생의 남편, 스탠리(Stanley Kowalski : 마론 브란도 분)는 폴란드 출생의 노동자로 다혈질에다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이며 음주와 도박을 일삼는 난폭한 사내이다. 그는 뭔가 환상을 쫓고 있는 듯하고 자신이 경멸하는 것같은 블랑쉬에게 처음부터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 확실히 블랑쉬는 이 도시가 어울리지 않다. 현실을 쉽게 받아들여 현실에 녹아들 수 없었던 그녀는 자꾸 자신의 내부로 도피 하려고만 했고 이러한 블랑쉬를 스탠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그래도 스탠리의 친구 미치는 블랑쉬에게 관심이 간다. 그녀와 데이트도 하고 그녀를 자기의 어머니에게 소개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스탠리의 방해로 미치는 블랑쉬의 곁을 떠나고, 스텔라가 아이를 출산하러 병원에 간 사이, 스탠리는 블랑쉬를 능멸한다. 스텔라의 집앞에 의사와 간호원이 기다리고 있다. 블랑쉬를 정신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따라나서기를 거부하던 블랑쉬는 의사의 친절한 말에 이끌려 결국 따라나선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이 영화에서 블랑쉬는 우선 '욕망(desire)'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라는 이름의 전차로 갈아탄다. 그리곤 '천국(Elysian Fields)'에서 하차한다. 이 천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의 왜곡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에니어그램은 각 유형 마다 생존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이 두려움에 따른 9가지 성격의 다양성이 결정된다고 본다.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생존에 대한 욕망을 만들어 내며, 이 욕망은 더욱 더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보다는 자신의 성격의 왜곡된 모습으로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유한한 존재로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진다. 모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간다. 사람의 궁극적인 ‘두려움’은 ‘죽음’이다. 사람마다 죽음을 느끼는 방식이 다르며 죽음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은 우리가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의 ‘욕망’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죽음’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을 만들어낸다. 생존에 대한 강한 욕망은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모습을 왜곡시키고 이 왜곡된 신성한 모습을 마치 자신의 모습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아가게 되며 삶을 절망하며 마치 주인 잃은 마차처럼 삶을 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는 목적은 자신의 두려움을 알아내고, 자신이 만든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나서 본질적인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4번 유형의 사람들은 예술가라 불리며, 명상적이며 낭만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유형이다. 이들의 생존의 문제, 즉 본질적인 두려움은 그들 스스로가 ‘정체성이 없음,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즉, 이들은 자기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본질적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따라서 이들의 생존에 대한 몸부림의 욕망은 ‘자기자신을 찾고자 하는 욕망, 남과 다른 나의 모습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표출함에 있어 특별함과 우아함, 남과 다른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이러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4번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알며 감수성이 예민하고 말이 없는 사람들이며, 대체로 감정적으로 정직하며 창의적이고 자신만의 세계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4번 유형들은 자신의 내면에 대해 생각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감동을 중시하고 평범함을 싫어한다. 특히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두려움에서 생기는 이들의 감정은 이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보다 슬픔이나 고독 등도 진하게 느끼게 하며 또한 자신 내면의 슬픔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이 많고 타인을 격려하고 배려하는 것을 좋아한다. 4번들은 독특하고 남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보고 자신의 것으로 재해석하면서 삶을 꾸며 나가는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행동에서 패션에 이르기까지 세련된 느낌과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세상에 아름다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자신이 중요한 존재이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때는 질투심과 복수심이 생기고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단점과 우울함에 빠지기도 있다. 독특함, 즉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창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4번 유형들이 특별해야 한다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집착에 빠지게 되면 자신의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더욱 더 독특함을 추구하며, 남이 가진 재능 등을 부러워하며 살아가는 선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4번 유형이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선망하지 않고 자신의 현재의 모습 자체가 심미안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때 이들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 다음 호에 계속 - |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E Bella(6) 글쓴이 : KEEC 2020-12-25 15:51 |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E Bella(6)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La Vita E Bella(1997) - Sacrifice,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 로베르토 베니니 (Roberto Benigni) .... 귀도 니콜레타 브라쉬 (Nicoletta Braschi) .... 도라 쥐스티노 두란노 (Giustino Durano) .... 귀도 삼촌 세르지오 비니 부스틱 (Sergio Bini Bustric) .... 페루치오 파피니 마리사 파레데스 (Marisa Paredes) .... 도라 어머니 조르지오 칸타리니 (Giorgio Cantarini) .... 조슈아 Main Themes: Sacrifice, Present, New Life, La Vita, Plan Psyche, 生, 死, 復活, Family, Happiness 영화 속 상징 보기 Sacrifice, 공양, 희생 공양은 시원적 통일의 회복, 즉 顯現세계에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것들이 재결합함을 의미한다. 창조행위에는 항상 희생이 따르며, 희생은 삶과 죽음의 탄생과 재생의 순환이라는 점에서, 공양은 창조행위 그 자체이며 인간을 우주의 여러 가지 모습과 일치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양은 화해를 통해서 신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며, 신의 의지에 몸을 바치고, 죄값을 치르는 행위이다. 인간을 공양물로 죽이는 인신공양은 신들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속죄의 의미와 신들에게 피를 봉헌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고대 유대에서 속죄날에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황야로 추방하였던 희생양은 몸을 대신해서 죄, 죄업의 결과를 받음, 죄의 정화를 상징한다.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 전체의 죄를 대신 진 희생양을 풀어줌으로써 과거 및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한 결과를 청산하는 것을 나타낸다. 귀도의 희생을 통해 그의 죽음은 가족의 삶을 가져 왔으며, 공양은 결국은 그가 인간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고 신의 의지에 몸을 맡기는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모습은 7번의 사회적 하위 유형의 모습을 표현한다. 7번의 사회적 하위 유형의 발휘는 우리의 삶 속에서 공동체와 함께 하게 한다. Child/어린이 귀도와 조슈아로 상징되는 어린이는 잠재력의 구체화, 미래의 가능성, 단순함, 순진무구를 나타낸다. 어린이나 자식은 개성을 지양하고 변용, 변화와 재생을 거쳐서 완성에 도달함을 상징한다. 어린이(대부분은 소년)는 4계절을 상징한다. 외투로 감싸인 어린이들은 겨울, 꽃과 나뭇잎으로 감싸인 어린이들은 봄, 곡식의 이삭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은 여름, 열매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은 가을을 상징한다. 귀도의 죽음과 조슈아의 숨바꼭질은 결국은 희생 후 새로운 삶의 계속을 의미한다. Clown, Fool, 어릿광대, 익살꾼, 바보 바보는 세속의 최고 권력자인 <왕>의 극단에 서 있는 존재이다. 바보, 어릿광대나 익살꾼은 궁정에서 가장 낮은 신분이며, 공양으로 드리는 희생양으로서 왕의 대역을 맡는다. 왕은 법과 질서의 힘을 상징하며, 어릿광대는 혼돈의 힘을 상징한다. 그래서 익살꾼이나 어릿광대는 제멋대로 말하거나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바보는 정신적으로 깨닫지 못한 인간으로 자기 앞에 어떤 미래가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나락으로 빠져드는 인간을 나타낸다. 이방인, Stranger 귀도는 어떠한 의미에서 이방인이다. 이방인은 미래의 힘이 찾아옴, 변화를 가져오는 자, 위장된 진적인 힘 또는 마술적인 힘을 나타낸다. 그의 사랑으로 인해 도라와 가족들에게 마술적인 기적이 나타난다. 왕자/공주, Prince, Princess 귀도는 자신을 왕자로 도라를 공주로 부른다. 왕자/공주는 잠재적 왕권, 젊은 왕이 가지는 활력을 나타낸다. 왕자는 국민과 왕궁이 생산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왕과 연결된다. 신화나 전설에 따르면 공주와 약혼하는 것은 높은 지위, 또는 고귀한 지위를 원하는 동경을 나타내지만 그것은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동경과 갈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꿈꾸는 자(자신)가 죽거나 아니면 더 높고 고귀한 신분으로 상승하든가 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함을 의미한다. 빵/Bread 귀도가 수용소에서 일을 하다 자신이 먹을 빵을 남겨 조슈아에게 주는 장면이 있다. 이는 생명을 나눔을 의미한다. 빵은 생명, 육체와 혼의 음식물,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양을 가진 생명이다. 빵은 단일한 물질의 수많은 곡물 알갱이들의 결합의 상징이며, 이것을 다시 나누어 먹음으로써 하나의 생명을 나눔을 의미한다. Box, 상자 조슈아가 숨게 되는 옷장 등의 상자는 여성적인 포함의 원리, 에워쌈, 자궁을 뜻한다. 죽음 속에서 다시 태어난 생명의 상징이다. 전차 Chariot 조슈아는 전차를 좋아한다. 그리고 귀도도 조슈아에게 게임의 승리는 상품으로 전차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은총가 사려깊음 속에서 살아남게 되는 강함을 상징한다. 말은 태양에 속하는 영적인 탈것, 전차는 인간에게 속하는 육적인 탈것이다. 전차를 모는 어자는 정신과 육체를 다스리는 지성이나 영혼을 나타낸다. 전차의 두 바퀴는 하늘과 땅을 의미하며, 단테에 의하면 욕망과 의지, 은총과 사려 깊음을 뜻한다. 연극 귀도는 영화 중에서 하나의 연극을 하게 된다. 이 연극은 결국은 귀도의 희생을 나타내는 비극(tragedy)이다. 연극의 시작은 디오니소스 신을 찬미하기 위해 공연한 노래와 춤이 그 시초라고 생각되고 있다. 초기의 그리스 연극은 극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디오니소스 신을 찬미하기 위한 종교적인 의식이었던 것이다. 여러 신들 가운데서 디오니소스 신은 가장 젊고 쾌적한 생활을 맡아서 주관하는, 포도주를 인간에게 준 신이다. 그리고 떠들썩한 환락을 좋아하는 신이기도 하다. 이 신의 부하에는 메나드스라는 여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밤에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면 횃불을 들고 숲속을 뛰어다니면서 큰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붙은 연극이 발달하고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게 됨에 따라 디오니소스의 성격도 차츰 점잖아졌다. 희곡의 최고 형식을 비극(悲劇, tragedy)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그리스어로 '산양의 노래'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산양을 디오니소스에게 바쳤기 때문인지 아니면 최고의 희곡 작품에 산양을 상품으로 주었기 때문인지 자세히는 모른다. - 끝- |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E Bella(5) 글쓴이 : KEEC 2020-11-25 20:23 |
영화와 에니어그램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E Bella(5)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La Vita E Bella(1997) - Sacrifice,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 로베르토 베니니 (Roberto Benigni) .... 귀도 니콜레타 브라쉬 (Nicoletta Braschi) .... 도라 쥐스티노 두란노 (Giustino Durano) .... 귀도 삼촌 세르지오 비니 부스틱 (Sergio Bini Bustric) .... 페루치오 파피니 마리사 파레데스 (Marisa Paredes) .... 도라 어머니 조르지오 칸타리니 (Giorgio Cantarini) .... 조슈아 Main Themes: Sacrifice, Present, New Life, La Vita, Plan Psyche, 生, 死, 復活, Family, Happiness 에니어그램에서 7번의 건강함을 나타내는 상징 동물은 나비이다. 7번이 건강할 때 나비처럼 고통을 겪고 자유감과 행복감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7번이 건강하지 않으면 원숭이처럼 모험과 쾌락을 즐기면서 어릿광대처럼 산만함과 즐거움을 추구하며 땅(현실)을 밟지 않는다. 나비는 부활과 생명의 상징이다. 추하고, 생명도 없어 보이는 번데기를 뚫고 아름다운 나비가 나온다. 7번의 특성 중에 하나인 창조행위에는 항상 희생이 따르며, 희생은 삶과 죽음의 탄생과 재생의 순환이라는 점에서, 공양은 창조행위 그 자체이며 인간을 우주의 여러 가지 모습과 일치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비는 가벼움과 변덕스러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상징은 그 변모에서 특징지어진다. 번데기가 존재의 잠재력을 지닌 알이라면, 거기에서 나오는 나비는 부활의 상징이다. 그것은 무덤에서 부활하는 것과 같다. 정신을 뜻하는 프시케(Psyche)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비를 의미한다. 신화에서 프시케는 나비의 날개를 달고 있으며 영혼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영혼이 육체를 떠나면서 나비로 변한다고 믿었다. 즉, 벌레가 죽어야 할 육체를 상징한다면, 나비는 불멸의 인간 영혼을 상징한다. 나비의 일생은 다음과 같은 네 단계를 거치며 삶을 이어간다. 알(탄생)-애벌레(성장)-번데기(죽음)-성충(재생). 이렇게 모체에서 알로 태어난 이후 유년에서 성년에 이르는 네 단계의 상태를 거치며 완전탈바꿈에 이른다(김정환). 이러한 생태 속에서 삶과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프랑스의 자유사상가인 아나톨 프랑스(1844∼1924)는 ≪에큐피르의 화원≫이란 수상록에서 나비를 말하였다(김정환). "만약 내가 신(神)이었다면 인간의 모형으로 원숭이를 닮게 할 것이 아니라 곤충의 형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곤충과 같이 인간도 애벌레 상태에서 먹고 자라는 혐오할 만한 삶을 우선 완수하도록 한 다음 최후의 변모 과정에서 남녀는 나비처럼 빛나는 날개를 펼쳐 이슬과 욕망으로 살다가 입맞춤 속에 숨을 끊도록 했을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밀알은 언제까지나 하나뿐이지만 땅에 떨어져서 죽으면 수많은 밀알이 생겨,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라는 구절이 성서에 나온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소중한 자기 희생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7번 유형의 본질적인 모습인 신성한 지혜와 신성한 계획을 가지고 타인과 더불어 함께하게 되면 절제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세 개의 생존 본능이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가지고 삶과 연결된 본질적인 기쁨을 가지고 삶의 신비러운 선물에 감사하고 현존의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경이로움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여기에는 어떠한 이유기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랑이, 삶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하기는 쉽지 않은 이야기이죠. 마치 우화같은 슬픔..... 그리고 경의로움과 행복함으로 이것이 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제아버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지요. 저에게 준 크나큰 선물입니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사랑을 보게 된다. 에니어그램은 사랑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본질로의 회귀에 대한 사랑의 서곡이다. 사랑은 점 9와 같이 꼭대기에 있으며 원의 시작과 마지막을 표시하고 있다(Rohr, & Ebert, 2002). 우리는 슬픔을 만나고, 분노를 만나고, 두려움을 만납니다. 그래서 어쨌단 말입니까? 이런 만남은 무엇 때문에 있습니까? 이러한 영적 질문에 대한 답은 “그 목적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에니어그램은 사랑안의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윤운성).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깨달음은 사랑 속에서 항상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self-remembering)에서 출발하고 이것이 에니어그램의 지혜이며 본질이다. (윤운성, 2004) - 다음 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