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 한 자락 덮고 사는 그는
그 어둠 때문에 심하게 괴로워하던 어느 날
그 어둠을 통하여
빛의 사람으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삶에 지쳐
시련의 아픔으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그 아픔을 통하여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배웠습니다.
미움 하나를 품고 살아온 그는
미워하는 고뇌로 잠 못 이루던 어느 날
스스로를 용서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자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랜 슬픔과 아픔과 고뇌(苦惱)의 무거운 짐을 내려 논
그의 빈 가슴에
영성의 풍성한 열매가 영그는
오늘을 살아가는 희망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냥 살아가는 맹목적인 생명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는 정유(定有)의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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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의 글은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에니어그램을 통하여 변화된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Dasein’은 : 하이데카의 철학에서 인용된 말로서 ‘현존재’라는 뜻을 지녔다.
정유(定有)의 존재는 : 오늘의 삶 자체를 자각(自覺) 하고 오늘의 존재의 의미(意味)와 이유(理由)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 하이데카는 이들에게 정유의 삶 또는 정유(定有)의 존재라고 말을 했다.
인간의 삶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오늘’을 말한다.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사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한 인간의 오늘의 삶은 영성(divine nature)으로의 접근이 아닌 매일을 그냥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오늘을 말한다.
칸트도 인간은 교육을 받아야하고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 하였고,
순자(荀子)도 인간을 악(惡)의 종자(種字-bad seed)로 보았지만 욕심을 버리고 수신(修身)하는 학습을 하면 덕(德)을 쌓고 인(仁)에 이른다 했습니다.
東洋人에게는 신(神)은 있었지만 하늘(天)과 땅(地)과 자연(自然) 그대로가 신(神)이었기 때문에 영성(靈性)을 쉬이 수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인에게는 God은 없습니다. 동양인의 견해로의 God은 서구인의 개념화에 의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양인은 인간을 행동과학에 원리를 두었지만 西洋人은 종교나 초자아에, 즉 영성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견(見-see)은 그냥 보는 것을 말하고, 관찰하면서 보는 것은 간(看-look)이라 한다.
정유(正有)는 간(看-look)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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