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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처럼 사는 왕, 왕처럼 사는 노예 - 미생이 던진 메시지 글쓴이 : KEEC   2015-05-19 11:31
노예처럼 사는 왕, 왕처럼 사는 노예

미생이 던진 메시지


글 한국형에니어그램 4기 전문강사 이후경 박사




최근 종영한 드라마 <미생>이 여전히 장안의 화제다. 미생(未生)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다. 이 드라마는 비정규직, 저학력자 문제로 얼룩진 직장인의 애환을 그리고있다. 인간관계 갈등, 불투명한 앞날,산더미 같은 일감에 치여 사는 직장인의 고난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미생(未生)에서 완생(完生)으로 나가려 하지만, 승산 없는 게임에서 매일 고민과 걱정에 빠진다.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할 길은 길이 아니다.”


행복이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1. “죽을 만큼 열심히 하면, 나도 가능한 겁니까?” <미생> 속 장그래는 ‘갑’의 세계에 들어간
이방인 ‘을’이다. 한때는 바둑 영재였지만, 화려한 스펙에 외국어 몇 개쯤은 필수인 사람들만 모
인 종합상사에 들어간다. 그는 고졸 검정고시 출신으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다. 집 판돈으로 홀어머니와 시작한 가게는 8개월 만에 쫄딱 망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기적 같은 기회가 온 것이다.

#2. “밟아보세요, 선배님. 그래봤자 발만 아프실 거예요.” 안영이는 찌질한 남자의 세계에 들어간
잘난 여자다. 그녀는 청춘의 절반을 아버지 빚을 갚는데 허덕였다. 과거를 모두 잊고 자신을
위해 살려는 마음으로, 종합상사에 지원해 수석으로 합격한다. 그런데 모든 걸 다 가진 듯 보이는
능력이 남자들의 어느 부분을 건드린다. 흠이 없는 게 흠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잘난 남자들의
역차별을 받게 된다.

#3. “장그래씨는 내가 믿고 살아온 정의가 아닙니다.” 장백기는 칭찬 없는 세상에 들어간
모범생이다. 그는 완벽한 스펙을 갖춘 엘리트다. 종합상사 첫 근무부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
다. 뭘 해도 칭찬받던 그가 칭찬 없는 세계에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고졸 낙하산 장그래는 일을
척척 해내고 있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이를 악물고 포기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4. “회사가 좋아요, 일도 좋습니다. 물론 여자도 좋고요.” 한석율은 현실 세계에 들어온
이상주의자다. 그는 일하는 게 가장 즐겁다는 보기 드문 청년이다. 특유의 자신감, 친화력,
뻔뻔함을 갖춘 정보통이다. 노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현장의 소중함을 알고, 그들을 책임지
는 대기업의 사장이 되리라 마음먹고 입사한다. 그런데 바로 위 상사가 그의 당당한 발걸음에
태클을 건다.
‘나’라는 존재로 사는 삶 설계해야 현대인은 수많은 고민과 걱정으로 살아간다. 고민과 걱정은 우리의 일상이다. 청소년은 공부에 시달리고, 부부는 육아문제로 걱정한다. 청년은 취업 때문에 고민하고, 주부는 돈 문제로 걱정한다.
노인은 뾰족한 대책이 없고, 부모는 교육문제로 걱정한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문제, 문제,
위기, 문제, 문제, 위기….’ 이러다 팔십 평생이 후딱 지나간다. 한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한 고민이 사라지면, 다른 걱정이 들어선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문제해결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직장인은 매일 전쟁터로 출근한다. 평생 일터가 사라지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겉으로 조용해도 경쟁은 치열하다. 경제대국이 됐다는데, 살아가는 게 날로 버겁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부족하다. 기업 곳간은 늘어나도, 가계 통장은 마이너스다. 돈은 항상
부족하고, 앞날은 막막하다. 겉으로 평온해도, 터지기 직전이다. 복지국가가 된다는데, 달라진
게 별로 없다. 부부 모두 일주일에 2~3일은 야근이다. 법정 휴가는 절반도 못 쓰고, 육아 휴직은
꿈도 못 꾼다.

“약자는 눈치를 본다.” 우리는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경험을 확장해 나간다. 어머니를 만나고, 이어 가족·친구·사회를 만난다. 산과 바다도 만나고, 꽃과 나무도 만난다. 만남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별들의 동화는 기억에서 흐려지고, 바다의 영상은 시야에서 멀어진다. 모래성을 쌓던
열정은 식어가고, 부풀었던 호기심도 퇴색한다. 이제 남는 것은 쏟아지는 정보와 알아야 하는
압박, 밀려오는 일감과 쳇바퀴 도는 권태다. 만남은 체험과 지혜를 상실하고, 꿈의 낙원은 생존의
지옥으로 추락한다. 나란 존재는 거부되고, 남의 시선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타자(他者)는 지옥이다.”



약자로서 지옥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되는 처방은 무엇일까?

첫째, 구조적인 문제임을 인식하자.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 상사·동료·부하도 힘들다. 모두가
뭔가 잘못된 것을 알고 있다. 모두 그렇다면 방법은 있다. 상사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동료가
어떻게 버티는지 물어보자.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지 기획해 보자. 구조적인 문제라고 100%
구조적인 것은 없다.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분명히 해결방법이
있다. 잠자는 동안 기적이 일어나 모든 게 해결됐다고 상상해보자. “도대체 어떤 기적이
일어났나요?” 거꾸로 추적해보자. 잠자는 동안 악몽이 실현되어 모든 게 망가졌다고 상상해보자.
“어떻게 더 악화되지 않았나요?” 바닥부터 올라가보자. 문제가 생기기 이전이나 예외 상황을
상상해보자. “도대체 그때는 왜 문제가 안 됐나요?” 문제 와해를 도모해보자.
행복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 꿈꿨던 성공이란 게
있었다. 어릴 적 그렸던 사랑이란 게 있었다. 부부간의 사랑, 자식과의 소통, 친구간의 우정, 놀이와
휴식은 중요한 가치다. 구조적인 문제로 삶의 가치를 버리지 말자. 할 수 있는 것은 해보자. 겁먹지
말고 용기를 내자. 어떻게든 인생을 인생답게 설계하자.

둘째, 순간을 즐기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주인이고, 남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노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인이 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노예로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커다란 결정보다 작은 선택에 주목하자. 커피냐 홍차냐를 선택하는 자유 아닌 자유를 즐기자.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살아가자. 주목받지 않는 조연의 편한 자유를 즐기자. 커다란 지혜보다
작은 지식에 기뻐하자. 앎에 현혹되어 깨달음에 눈먼 자유를 즐기자. 대책 없는 희망에 기뻐하고,
무책임한 위로에 감사하자. 순간을 즐기자. 그러나 노예라는 건만은 잊지 말자.
수메르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노예처럼 사는 왕이 있고, 왕처럼 사는 노예가 있다.”

셋째, 목적을 가지자. 너무 많은 목표에 시달려 왔다. 하루하루 할 일에 무너져 왔다. 내가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조차 생각해볼 여유 없이 왔다. 가끔, 정거장에 앉아 갈 곳 없는 사람이
되자. 지나가는 버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순간, 커다란 목적이 보인다. 모든 목표가 사라질
때 진짜 목적이 보인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시작하자. 오랫동안 생활을 위해 삶을 희생해 왔다.
“누가 지나가는 새를 진주로 던져 맞추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