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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소품 : 기인 쉬저(許哲) 여사 (양재오) 글쓴이 : KEEC   2012-08-27 11:31

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만, 제 인생의 스승(mentor)께서 제게 가끔 들려주시던 말씀 가운데 제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바다만큼 넓어야 한다."
사실 인간의 생각을 무한히 초월하는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인 하느님, 그 분[의 마음]을 광대무변한 우주(宇宙)에서 한낱 티끌만도 못한 제가 어찌 제대로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여, 저는 그 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다만큼'이라는 말이 갖는 은유(metaphor)를 통해서, 조금 씩 조금씩 하느님의 마음에 다가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은유가 나를 부담 없이 조금 씩 조금씩 하느님, 그 분께 이끌고 갔다고 봅니다. 물론, 그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또 앞으로도 계속되겠지요.

세상만사를 섭리하시는 하느님은 인간의 이성을 무한히 초월(transcendence)하는가 하면,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내밀하게 피조물 안에 내재(immanence, panentheism:汎在神論)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인식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고 묻습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 때문이겠지요.

그리스도교(기독교) 신자들은 '하느님은 사랑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계시)'고 믿고 삽니다. 따라서 얄팍한 두뇌(머리)를 회전시켜서는 단지 그 분(하느님)에 대하여 극히 제한되고, 지엽적인 개념만을 얻을 수 있을 뿐, 진정한 그 분을 만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런 연유로, 하느님을 신앙하지 않는 사람도, 저들의 머리를 써서, 하느님에 대하여 이렇쿵 저러쿵 수군거리지만, 그런 하느님은 그들의 머리 속에서 그려낸 이미지 혹은 그 어떤 자의적인 상념이나 개념에 불과할 뿐일 것입니다. 때문에 저들은 생각이 달라지면 언제든 그 인상이나 관념을 저들의 머리 속에서 몰아내거나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얼마든지 새로운 하느님 관념으로 대치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서 전승되어온 하느님은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인간의 理性을 무한히 超越하시는 분이신가 하면, 그와 동시에 나 자신보다 더 내밀하게 내 안에 現存 - 內在하시는 분이시라고 생각됩니다. 성서의 전승에 의하면, 그 분은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하느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이름 하여 '임마누엘(Immanuel)'이시지요.

그러므로 그 누가 하느님을 뵙고 싶으면, 그 분이 스스로 드러내신대로, 그분의 방식에 따른 사랑의 삶을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이 때, 그 하느님은 특정한 종교 전통이나, 신앙체계에 갇힐 수 없는 분으로서, 선한 지향을 지니고 하느님의 사랑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체험될 것입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기인 쉬저 여사 이야기는 타이완 천주교회 박애 재단의 월보에 실린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바다같이 열린 넓은 마음으로 한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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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저(許哲) 여사는 101세의 고령이다. 그녀가 1900년에 태어났으니, 중국인의 나이계산법에 따르면 101세이다. 그녀는 싱가폴 인으로서, 언니와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이 있으며,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다. 그녀의 남동생은 천주교 신부요, 언니와 여동생은 일찍이 교회 학교에서 교장을 역임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났다. 금년 101세 된 그녀는 부처(佛)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징콩(淨空)법사를 은사로 모시고 있는데, 그 법사로부터 귀의증(歸依證)을 받았다. 법사는 그녀를 수녀거사(修女居士)라고 높여 부른다.

쉬저거사는 어려서부터 채소를 먹는다. 그녀는 육류(肉類)를 먹어본 적이 없으며, 우연히 생선 몇마리를 먹고는 피부가 붉게 부풀어 오른 적이 있었다. 그녀의 식생활은 매우 간소하다. 아침에는 우유 한잔, 점심 때는 사과 하나 혹은 채소 한 접시, 그리고 저녁에는 쑤안나이(酸 , 몽고인들이 즐겨마시는 요구르트)이다. 그녀는 밥도 짖지 않고 반찬도 만들지 않는다. 그녀는 말하기를, 시장 보러가고, 채소 씻고, 썰고, 볶고 그리고 설거지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그녀가 시간을 절약하는 까닭은 양로원에서 봉사하는 시간을 더 내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술도 마시지 않고, 차도 마시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는다. 그녀는 옷도 사지 않고, 입는 것은 모두 쓰레기통에서 집어온 것이다. 옷이 몸에 맞지 않으면 스스로 손질해서 입는다. 그녀는 추위도 상관 않고 더위도 상관 않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동안 그녀는 단지 얇은 옷 한 벌로 지낸다. 그녀는 운동과 요가를 즐겨하며, 가부좌를 틀고 상반신을 곧게 세우는 좌선도 한다. 매일 이른 아침 그녀는 걷기를 한다. 비가 오는 날도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우산을 펴들고 걷는다. 그녀는 알맞은 운동을 하므로, 감기 한번 앓은 적이 없고, 허리가 아프거나 등이 쑤신 적이 없다. 그녀의 귀와 눈은 아직 밝다. 매일 독서를 하는데, 책을 볼 때 안경을 쓰지도 않는다. 그녀는 독서를 좋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흡수한다. 좋은 책을 읽을 때 그녀는 잠자는 것도 포기한다. 그녀는 중국어(華語)를 한다. 그녀의 만다린(Mandarin,北京普通話)은 표준은 아니지만 음성은 대단히 분명하고, 누구나 알아듣는다. 그녀의 광동화(Kentonese, 廣東話)와 영어는 대단히 유창하다.

101세의 고령인 쉬저가 텔레비젼에 출연했을 때, 그녀를 소개하는 사람이 그녀를 작은 동생(小妹妹)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키는 크지 않으나, 몸은 대단히 건강하다. 그녀는 (어떤 사람들처럼) 말로 노인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참여하여 돕는다. 그녀가 보살피는 노인은 국내(싱가폴)에만 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말레이시아, 인도, 네팔에까지 이른다. 그녀는 부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늘 돈이 있어서 가난한 이를 돕는다. 그녀의 돈은 모두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보내준 것이다. 사람들이 왜 돈을 그녀에게 주는가? (이에 대하여) 그녀는 말한다 : 왜냐하면 사람들은 내가 늘 가난한 이를 돕고, 좋은 일을 하며,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한 몸은 하느님(老天爺)이 돌보아 주신다.

그녀는 징콩법사의 저작을 즐겨 읽고 불법(佛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보다 나이 어린 천주교 신자가 그녀에게 묻는다 :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데, 어째서 다른 종교의 책을 읽는가?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 나는 어떤 종교도 상관하지 않는다. 나의 종교(宗敎)는 오직 사랑(愛)이다. 귀의증(歸依證)을 받을 때, 징콩법사는 그녀는 이미 ’몸이 원하는 것을 문제로 삼지 않는다’(不計身願)고 칭송하였다. 그녀는 춥고 더운 것을 모르며, 이미 망아(忘我), 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나이 100세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앓은 적이 없는데, 그것은 그녀가 몸의 상(身相)에 대하여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사는 보충해서 말한다 : 나는 오늘 비단 그녀를 삼귀(三歸)의 제자로 삼을 뿐만 아니라, 오계(五戒)의 제자의 증서(證書) 마저도 그녀에게 주었다. 본질상 그녀는 바로 여래(如來)의 제자이다. 그녀는 좋은 마음을 품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일을 행하는 좋은 사람이다. 그녀는 세상 사람을 사랑하고 중생을 사랑한다.

계속해서, 징콩법사는 불교거사림(佛敎居士林) 큰 홀에 자리한 오백여명의 동료 수행자들에게 이와 같이 밝혔다 : 몸의 요구에 연연하면, 절대로 거룩한 경계에 들어갈 수 없다. 이른바 거룩함(聖), 이것은 큰 거룩함(大聖)이 아니라 작은 거룩함(小聖)이며, 바로 소승의 첫 열매(小乘初果)이다. 결론은 이러하다 : 도를 닦는 사람(修道人), 출가한 사람(出家人)이 만일 여전히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겨하고, 몸에 살이 쪘는지 혹은 여위었는지, 키가 큰지 혹은 작은지에 대하여 개의하고 좋은 옻 골라 입는데 신경 쓴다면, 분명히 그는 여전히 몸의 상(身相)에 집착하고, 몸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한 것이다. 불법(佛法)의 기준에 따라서 보면, 이런 사람은 아직 육도중생(六道衆生)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 그들은 여전히 범부(凡夫)이며, 여전히 속인(俗子)이다.

쉬저 거사는 모든 것(一切)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산다. 그녀는 자비(慈悲)와 사랑(愛心)으로 충만하고 스스로의 편안함과 즐거움(安樂)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녀는 국내외에 이미 10개의 양로원을 세웠고, 스스로는 2개의 양로원에서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 어떤 대가도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義工)로 일하고 있다. 지금 그녀는 101세의 고령으로서 가정식 양로원(家庭式安老院)을 세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녀의 이상에 따르면, 노인은 단지 수용되거나 안정된 생활을 얻는 것이어서는 안되며,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친절한 보살핌과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쉬저는 몸의 상(身相)에 대하여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나이를 잊고 산다 : 그녀는 과거의 100년을 뒤로하고, 오직 앞을 향하여 전력투구하며, 일을 도모할 뿐이다. 불법의 관념에 따르면, 내 몸(身體)이 나(我)가 아니다 : 나는 누구인가? 모든 고난을 겪는 중생이 바로 나다.

쉬저는 가난한 사람(窮人)을 위해서 살고, 노인을 위해서 살고, 고난을 겪는 중생을 위해서 산다 : 그녀의 생활이 곧 사랑이요, 그녀가 믿는 종교가 사랑이다. 성 요한 사도는 말한다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天主是愛). 징콩법사가 쉬저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이렇게 찬미한다 : 그녀는 다원문화(多元文化)의 핵심에 정통하였다. 그녀가 찾아낸 모든 종교의 뿌리,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 이 글은 財團法人天主敎博愛基金會(Taiwan Catholic Mission Foundation)에서 발간한 天主敎博愛會刊 第11期(2000.12月發行)에 실린것으로, 朱秉欣이 쓴 靈修小品 奇人 許哲이다(도움말 및 번역 양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