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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검사 구입 및 검사잃어버린 미소(微笑)를 찾아서- 서산 마애삼존불 (양재오) 글쓴이 : KEEC 2012-08-27 11:47 |
잃어버린 미소(微笑)를 찾아서- 서산 마애삼존불 글. 사진 양재오 이 글은 지난 10월 28일, 제28기 박물관특설강좌에 제출한 글이다 잃어버린 미소(微笑)를 찾아서- 서산 마애삼존불 글. 사진 양재오 오늘날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히 변화하는 산업화된 사회, 지식을 기반으로 한 정보화 사회에서 살아간다. 이와 같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든다면, 그것은 아마도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이들의 얼굴은 대체로 무표정할 뿐만 아니라 생동감이 없다. 저들의 몸은 살아있지만 그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서 휴식이 필요해 보인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의 얼굴에 그 무슨 결의에 차있는 듯한 긴장감과 적의(敵意)마저 서려있는 듯 하다. 버스나 전철에서 그리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길을 걷다가 서로 부딪힐 때 미안한 표정이나 미소로 미안함을 표시하는 여유를 가진 이들을 만나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게 중에 어떤 이들은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역정어린 기세로 상대를 제압하려들기도 한다. 웃을 수 있는 여유와 미소를 잃어버린 세대의 한 단면이다.
그러면 우리 조상들도 이처럼 웃음을 잃고 마음의 여유 없이 각박하게 살았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백제의 마애불을 친견하면서1), 우리 선조들은 꾸밈없는 웃음과 미소(微笑) 띤 얼굴로 이웃을 대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여기서 나는 백제의 마애불, 그 가운데서 특히 백제 후기의 작품으로 얼굴 가득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어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고, 다른 마애불에 비하여 보존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하여 감상이 용이하다고 생각되는 서산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의 얼굴 표정을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도톰한 눈두덩과 웃음 진 눈매, 널찍하고 펑퍼짐한 코와 잔잔한 입가의 미소, 그야말로 온 얼굴이 웃음으로 가득한 백제의 불상은 서산 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가야산의 절벽에 새겨져 있는 이 마애삼존불은 2.8 미터 높이의 주존불(主尊佛) 입상과 각각 1.7 미터 높이의 우협시인 봉지보주 관음보살(捧持寶珠觀音菩薩)과 좌협시인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백제인의 높은 석조기술을 보여준다.
먼저, 두 협시보살을 양쪽에 거느리고 나타난 듯한 중후한 체구의 입상인 본존(本尊)은 그 머리에 보주형 두광(寶珠形頭光)이 있으며 소발의 머리에 육계는 작다. 또한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미소를 함빡 머금고, 대체로 반쯤 감긴 눈에 명상하는 모습을 지닌 여타 여래와 달리, 이 본존의 눈은 살구 씨 알맹이 같은 모양(杏仁形)의 눈을 활짝 뜨고 있다. 가사의 옷 주름은 U자 형으로 늘어뜨려서 자연스럽고 넉넉한 맛이 있다. 이 본존의 수인(手印)은 시무외인(施無畏印),여원인(與願印)으로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꼬부리고 있다.
첫 눈에 들어오는 이 본존은 지존한 모습으로 위엄이 서려있기보다는 오히려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친근하게 다가와 금방이라도 내 어깨를 다독여 줄 듯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원만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삼존불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남성적 이미지를 좀 더 드러내는 이 본존불은 그 나름의 기품을 지녔으면서도, 그것이 내면으로부터 은근히 풍겨 나오는 까닭에, 뭇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자태를 보여준다.
그 다음, 본존 오른쪽의 관음보살은 머리에 높은 관을 쓰고 얼굴(相好)은 본존과 같이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는데 눈과 입 그리고 두 볼과 뺨에 이르기까지 온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거기에 더하여 홍조(紅潮)를 띠고 있는 듯 하다. 강우방 교수는 “이 관음보살의 얼굴은 삼국시대 불상들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라고 평가하는데,2) 이에 공감한다. 나는 또한 이 관음보살을 볼 때마다 백제의 앳된 처녀나 젊은 여인의 가냘픈 듯 옅게 피어오르는 미소를 떠올린다. 유달리 미소가 앳되고 아름다운 이 관음보살의 목에는 짧은 목걸이가 걸려있고, 마치 어루만지듯 소담스럽게 두 손으로 가슴 앞의 보주(寶珠)를 소중하게 부여잡고 있다.
또한 지극히 여성적인 풍모를 지니고 있는 이 관음보살상은 백제 여인의 전형으로 보인다. 아니, 어쩌면 이 삼존불을 배치하고 조성한 장인의 가슴 속에 새겨진 백제 여인의 모습이 이처럼 드러난 것일 게다. 소박하고 부드러운 얼굴에 드리운 소리 없는 웃음으로 이 곳을 찾아 소박하면서도 절실한 기원을 하는 백제 사람들을 맞이하였을 이 관음보살은 일상에서 갖은 애환을 지니고 사는 이들의 친근한 벗이요 동반자가 되었을 것이다.
끝으로, 본존 왼쪽에는 통상적인 삼존불 양식에서 벗어나서 파격(破格)적으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배치되었다. 현존하는 이 보살상은 두 팔에 크게 손상을 입고 있으나 전체의 형태는 충분히 볼 수 있으며, 특히 이 보살의 얼굴부분이 손상을 입지 않아서 무척 다행스럽다. 머리에는 관을 썼고 얼굴은 다른 상들과 같이 원만형(圓滿形)으로 온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상체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이고 목에는 짧은 목걸이를 걸쳤고 허리 밑으로 내려온 옷자락에는 고식의 옷 주름이 나 있다. 머리 뒤에는 큰 보주형 광배가 있는데 그 형식은 오른쪽의 관음보살의 광배 양식과 같다.
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보살로서,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인 그 용모(容貌)와 자태(姿態)가 내 가슴에 깊이 자리한다. 글쎄다. 이와 같이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보살에게서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 전에 노심초사 고뇌하고 번민했던 깊은 사유(思惟)의 그 어떤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장난기 어린 얼굴에 반가좌(半跏座)로 가슴을 쭉 펴고 비스듬히 앉아 한쪽 발을 구르며 '오늘은 어제와 다른 그 무슨 재미나고 좋은 일이 없을까'하고 궁리하는 개구쟁이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고 천진무구한 이 보살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자체가 큰 기쁨이요 행복이 아닐까.
생동감 있는 얼굴과 손의 양감이 느껴지며 부드러운 옷 표현, 그리고 얼굴 전체에 미소를 함박 머금고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은 명실공히 백제의 마애불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3)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 산동반도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까닭에 중국으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전해졌을 부처의 가르침(佛敎)과 함께 전해왔을 불상 양식은 시간이 지나며 백제화 하였을 터인데, 우리는 그것을 서산 마애삼존불4)에서 본다. 이러한 마애불을 통하여 백제화한 불보살(佛菩薩)을 친견하게 되고, 그 속에 내재한 백제 사람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얼굴을 대면하게 되는 것은 큰 기쁨이요 행운이다. 분망한 현대사회에서 미소(微笑)를 거의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와 같은 마애불의 친견을 통하여 우리 선조인 백제인의 미소를 만나고 그들과 같은 여유를 회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이 글을 쓰는데 도움을 받은 책들 : (1)강우방,<한국 불교 조각의 흐름>,대원사,1999. (2)문명대,<마애불>,대원사,2003. (3)안휘준,<한국의 미술과 문화>,시공사,2000.
미주)
1) “백제 마애불은 예산 사방불, 태안 마애불, 서산 마애불 등 3점밖에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들은 백제 불상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불상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이들은 중국과 인도의 불교문화와 교류관계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귀중한 예로서 중요시되고 있다.”(문명대,<마애불>,대원사,2003. 32쪽에서 인용) 이 가운데 예산 사방불은 아직 친견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사진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어 못내 아쉬운데,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한편 2년 전 안면도 꽃지에서 개최된 국제 꽃 박람회를 다녀오는 길에 다행히 태안 마애삼존불(국보 제307호)을 친견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친견하고 싶었던 서산 마애삼존불은 마침 지난 해 9월 해미에 들렀다 오는 길에 방문하였고, 금년에는 역시 지난 달(9월 중순)에 두 번째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이 가운데 예산 사방불(혹, 사면불,四面佛)은 백제시대 납석제(蠟石制,곱돌) 돌기둥에 새긴 사방불상(보물 제794호)인데, 문명대 교수는 이것이 거대한 석주가 아니어서 마애불이라고 하기에는 꼭 맞지 않는 점도 있다고 언급하면서, 그 조각 기법이 마애적인 것으로 보고, 이 불상을 일단 마애불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문명대,<마애불>,대원사,2003, 40쪽 참조) 한편 이 예산 사면불의 머리부분이 잘려나가서 그 얼굴(相好)의 전모를 볼 수 없는 점이 안타깝다.
2) 강우방,<한국 불교 조각의 흐름>,대원사,1999, 183-184쪽.
3) 위와 같은 책 184쪽 참조. 4) 강우방 교수는 그가 쓴 책 <한국 불교 조각의 흐름> 184쪽에서 “이러한 삼존불의 도상은 백제의 독자적인 창안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것은 불교 신앙의 체계도 백제 나름으로 전개되어 갔음을 의미한다.”고 언급하였다. 실상 우리는 태안 마애삼존불과 함께 이곳 서산 마애삼존불에서 드러난 기존의 불상조성 형식 및 양식과는 다른 파격(破格)적 표현을 통하여, 당시 이 마애불을 구상하고 조성한 사람들의 주체적 문화역량과 자기다움을 의연하게 표현하는 자신감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애초의 대승불교운동이 그러하고, 일련의 불교전파 과정에서 보듯, 이 마애불을 만든 백제 사람들도 그들의 토착 사회와 문화의 자양분을 지니고 주체적으로 부처의 가르침(佛敎)을 수용하였고, 그들 자신의 불교적 사유의 자유로움과 창의성을 발휘(發揮)하였는바, 마애불을 통하여 그들의 얼굴, 그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각인(刻印)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이해와 함께 다시 한번 서산 마애삼존불을 꼼꼼히 뜯어보면, 무슨 까닭에서인지 “이 마애삼존불을 조각한 이가 출가 수행자였을까, 재가불자였을까.”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그러고 나서 곰곰이 좀 더 생각하는 과정에, 이 마애삼존불을 조각한 장인은 아마도 불심이 돈독한 재가불자(在家佛子)였을 거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그런 생각의 일단은 거대한 화강암 벽에 새겨진 이 삼존불의 배치(가운데 주존불을 중심으로 하여 그 오른쪽에 관음보살, 그 왼쪽에 반가사유보살을 배치 한 것)에서 주존을 중심으로 하여 그 양쪽에 배치된 보살이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귀여운 아들 하나 둔 불심(佛心)이 돈독한 장인이 사찰(寺刹)의 명으로 이 마애삼존불을 조각하는 과정에서, 화목하고 화기애애한 그 자신의 가정의 이미지가 암묵적으로 투영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이 마애삼존불을 조성한 장인은 재가불자로서, 혹시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 전에 이룬 가정을 한 번 염두에 두고, 그런 상념이 그의 손길을 통하여 이 암벽 화강암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 마애삼존불에는 출가 이전의 고타마 싯다르타가 가운데 배치되고 그의 부인 야소다라를 오른 쪽에 그리고 아들 라훌라가 왼쪽에 배치되어 하나의 오붓한 가정을 이루는 배치도를 한 번 그려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산 마애삼존불 앞에 선 나에게 이와 같은 상념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도 '예수, 마리아, 요셉'이 이루는 그리스도교의 성가정 Holy Family의 모형이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예수 부활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의 유년시절과 그 시절 어린 예수가 그의 양부로 일컬어지는 요셉과 그의 모친 마리아와 함께 오붓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담은 상본(像本)들이 많이 제작되어, 신심이 돈독한 신자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다. 이것은 이를테면 그리스도교의 '삼존상(三尊像)'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 글은 지난 10월 28일, 제28기 박물관특설강좌에 제출한 글이다 )
http://mm.dreamwiz.com/media/folderListSlide.asp?uid=bonojoy&folder=1&list_id=3864209&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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