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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역 (下一站) - 양재오 글쓴이 : KEEC   2012-08-27 13:10


다음 역 (下一站)

글. 리쟈통(李家同)/ 번역. 양재오


내가 기차를 탔을 때, 이 기차간이 매우 시끌시끌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긴 방학이 막 시작된다는 것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귀가한다. 나와 같이 공적인 일로 출장을 가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나는 이번 거래를 위해 왔다. 나는 본래 기차 안에서 이 번 거래를 어떻게 하면 잘 성사시킬 수 있을까 하고 생각 좀 해볼 수 있으려니 했는데, 지금 실제로 거의 그렇게 할 형편이 못 된다. 아이들이 차 안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니 어떻게 차분히 생각에 집중할 수 있을까?

자리 하나 건너 부인 한 사람이 사내 아이 하나를 데리고 앉아있다. 이 아이가 나를 보고는 계속 웃음 짓는다. 그러더니 아무 거리낌 없이 나보고 자기를 안아달라고 한다. 아이의 엄마는 그럴 수 없다고 그 꼬마가 내게 달려드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이 개구쟁이 꼬마는 내 안경에 많은 흥미를 느끼고, 한 번 두 번 시도하더니, 마침내 안경을 벗겨가지고 달아났다. 나는 급히 안경을 회수했다. 그 뒤 이 꼬마는 내가 보고 있던 문건을 빼앗아 달아난다. 나 또한 곧바로 그것을 챙겨서 돌아왔다. 이 꼬마는 무슨 일이든 못할 일이 없다. 마침내 내 곁에 와서는 잠이 든다. 얼마 뒤 나는 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졌고, 내 가슴이 완전히 축축해 진 것을 알았다. 보아하니 나는 더 이상 계속하여 그 거래 문건을 볼 수가 없게 생겨서, 나도 그냥 한 숨 자기로 마음먹었다.

잠에서 깬 뒤, 나는 내가 매우 호화로운 객실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앉은 의자는 회전이 가능한 가죽의자였고, 그 가죽의자 옆에는 작은 탁자가 있고, 오른 쪽 탁자 위에는 탁자용 전등이 있고 왼쪽 탁자 위는 비어있으며, 의자 뒤쪽에도 전기스탠드가 있는데 그것을 켜면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여 나는 내 거래 문건을 그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다소 곤혹스러울 때, 양복을 입은 젊은이가 차가 든 쟁반과 과자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가 "이 선생님, 이것은 오후 차입니다."하며 차를 건넨다. 오후 차의 찻주전자에는 장미꽃으로 가득하다. 찻잔과 쟁반 모두 장미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내가 오후 차를 마시자 젊은이가 다시 찻잔과 찻주전자 등 차 도구를 챙길 때, 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이 기차에 다른 사람들도 있는가?"하고 물었다. 그는 "물론 있습니다. 당신의 비서 장 선생도 차 안에 있습니다. " 그가 내게 버튼을 보여주며, 내가 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장 선생이 곧바로 달려올 것이라고 일러준다.

장 선생이 과연 도착했다. 그는 오자마자 곧 나와 함께 앞으로 거래할 한 건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우리의 주요한 문제는 어느 회사의 주식 30 퍼센트를 구입하느냐 마느냐에 관한 것이다. 나는 장 선생과 토론하고 나서 다른 몇 가지 자료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장 선생은 나를 데리고 옆에 있는 객실로 갔다. 그 객실에는 마호가니로 된 책상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컴퓨터가 놓여있다. 나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원하는 자료를 찾은 뒤, 그 회사 주식을 사들이기로 결정하였다. 이 번에 거래되는 액수는 제법 크다. 장 비서는 내가 직접 서명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여기서 말하는 서명은 물론 전자 서명을 말한다. 나는 서명을 마치자 장 비서는 그 젊은이를 불러 커피를 가져오도록 했다. 커피는 은으로 된 주전자에 담겼고, 거기에 설탕 등이 담긴 용기도 모두 은으로 된 제품이다.

커피를 마신 뒤 장 비서는 텔레비전을 켰다. 큰 스크린 위에 경제 뉴스를 담당하는 아나운서가 최신 소식을 전하고 있다. 뉴스가 다루는 것은 어느 신비로운 고객이 한 회사의 주식을 마음에 두고 그것을 대량으로 사들였다는 것이다. 그 주식 값은 큰 폭으로 상승했는데, 그의 추정에 의하면 몇 분 지나지 않아 그 주가가 상한가로 오를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때, 나는 재무 담당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가 이틀 뒤에 그 주식을 팔 수 있을 것이라고 보며, 그 때 적어도 40 억의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에게 최신 재무 현황 보고서를 내게 보내달라고 했더니, 이미 그것을 팩스로 보냈으니, 내가 컴퓨터에서 그것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나서 그가 이 번 거래를 통해서 얻게 될 수익에 관한 액수를 이미 그곳에 적시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보고 또 보아도 마치 그것이 내 재산 같아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장 비서에게 막 물어보려던 순간, 문득 40 억이라는 액수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큰돈이지만 실제로 나에게는 그저 푼돈에 불과하고, 내가 그 만 한 돈을 벌든 혹은 잃든 그게 나에게 무슨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그만 고민이 있다. 그것은 내가 마치 쓸모없는 사람이라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이 내게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40 억을 벌었으면 무척 기뻐 할 텐데, 내가 그만한 돈을 벌어도 별다른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 때 또 다른 문제가 있어서 장 비서에게 물었다. 이 기차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음 역은 어디인가? 장 비서도 이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답한다. 그가 아는 것은 다만 철로를 내가 만들었고, 기차도 내가 설계했기 때문에 다음 역이 어디인지는 내가 알 뿐이며, 다른 사람들은 다만 나를 위해 일할 뿐이라고 한다. 나는 다시 묻는다. 내가 지금 기차를 멈추게 할 수 있는가? 장 비서의 말이 사람을 더욱 놀라게 한다. 그는 기차를 멈추게 할 방법이 없고, 다만 내가 창밖을 바라볼 수 있다고 가르쳐 준다.

이 기차는 큰 유리창이 있어서 창밖으로 마치 몽환적인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잘 볼 수 있다. 그 때 우리는 거대한 황야를 지나고 있었다. 우리 왼 쪽 편 먼 곳은 모두 산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모든 산꼭대기는 흰 눈으로 덮혀있다. 나는 이전에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지난 날 황야에 여전히 드문드문 집들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창밖의 황야에는 아무런 집도 보이지 않는다. 해가 서산에 넘어갈 때 산꼭대기에 쌓인 눈이 석양의 빛을 받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태양이 완전히 서쪽으로 넘어가고 나면 바깥은 완전히 어둠에 잠기지 않겠는가?

나는 장 비서가 말한 뜻을 알겠다. 그의 말은 곧 설령 기차는 멈출 수 있고, 내가 하차 할 수도 있지만, 그 다음 어디로 갈 것인가? 아무 여관도 없으니, 오늘 밤 어느 집에서 유숙할 것인가?

장 비서는 나를 데리고 다른 객실로 갔다. 과연 모두 호화롭기 그지없다. 침대차와 식당차 외에도 도서실도 있고, 멀티미디어 실이 있는 객차도 있다. 장 비서는 내가 음향을 들어볼 수 있게 했고, 대형 스크린의 텔레비전도 보여주었다.

장 비서가 내게 말한다. 이와 같은 기차는 세상에서 쉽게 볼 수 없고, 또 사람들이 모두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능력을 가진 나를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나도 이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 사실 모른다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정말 하루 빨리 다음 역에서 내리고 싶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어둡고 고립무원인 황야 같은 곳에 이를 수 없다. 나는 다만 내가 끊임없이 재산을 증식할 수 있고,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할 일 없는 시간에 나는 장 비서와 함께 BBC 세계 뉴스를 보기로 했다. BBC는 마침 뉴스를 전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굶주리는 사람이 이미 10 억을 넘어섰다는 보도이다. 나는 문득 생각이 하나 떠오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나는 돈이 있다. 내 돈은 이미 내게 아무 의미가 없게 되어 버렸다. 따라서 나는 장 비서를 불러서 내 재산을 출연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다. 나는 그가 나를 대신하여 간단한 문서 초안을 작성하도록 했고, 내 변호사에게 위탁하여 내 재산을 앞으로 출범시켜 운영할 재단에 출연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재단은 몇몇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들로 하여금 운영하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그 재단의 기금 가운데서 일전 한 푼 꺼내 쓰지 않을 것이다. 재단에 귀속된 돈은 오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쓰이게 될 것이다. 내 변호사는 나를 대신하여 책임을 지고 공정하게 이 재단을 운영할 사회 인사를 찾아낼 것이다.

장 비서는 한 시간 뒤에 이 번 임무를 완수했다. 그는 내게 재단 이사회의 명단을 건네주었는데, 과연 모두 명성이 있는 이들이고 절대로 믿을 만한 이들이다. 이번 일이 재산을 이동하는 일이라 반드시 내가 직접 서명을 해야 한다. 아무튼 서명은 모두 전자 서명으로 이루어졌다. 장 비서는 내가 서명하기 전에 갑자기 나를 때린다. 깜짝 놀란 나는 그에게 왜 나를 때리느냐고 묻는다. 그는 내가 맑은 정신으로 서명에 임하는가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반응을 보인 것을 보고 내 정신이 맑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내 스스로 내가 맑게 깨어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안다. 그 때 나는 무척 즐거웠다. 그것은 내가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문득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명을 마친 뒤, 장 비서는 나를 보고 창밖의 풍경을 보라고 한다. 나는 창밖에 집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날이 이미 저물었기 때문에 그 집들은 모두 불을 밝혀서 아주 잘 보인다. 그 가운데 나는 어느 학교의 농구장을 보았다. 남자 아이들 몇몇이 농구를 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무척 기뻤다. 내가 어렸을 때, 때때로 내가 저녁에 농구를 하고 싶었지만, 그 때 운동장에 등이 없어서 하질 못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저녁에 등을 밝힌 운동장에서 농구를 할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할 것이다.

나는 다른 일 한 가지를 주목했는데, 그것은 기차의 속도가 점차 느려진다는 것이다.

장 비서가 내게 말한다. "이 선생님, 우리는 당신이 깨어난 그 객실로 가야하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죽의자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장 비서가 다시 묻는다. "이 선생님, 피곤하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 비서는 크리스털 유리 잔에 물을 따라 준다. 주머니에서 약을 하나 꺼내서 그것을 물에 넣으니, 기포가 생긴다. 장 비서는 물을 찻상 위에 올려 놓으며, 내게 말한다. "저는 기차가 어떻게 다음 역에 도착할지 알고 있을지라도, 오직 당신 자신이 기차를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당신을 따를 뿐이지, 당신을 대신해서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장 비서가 떠난다. 나는 물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뒤, 나는 그 사내아이가 여전히 내 가슴에서 잠자고 있는 것을 알았다. 아이 엄마는 힘껏 아이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그들이 곧 차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엄마는 다시 한 번 아이에게 나를 보고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시킨다. 그 아이가 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는지 어땠는지 더 이상 기억은 못한다. 다만 그가 나에게 "할아버지는 어째서 그렇게도 기쁘세요?" 하고 물었던 것은 기억한다. 그 때 나는 그에게 "그것은 내가 내릴 다음 역에 곧 도착하기 때문이란다."하고 대답했다.

* 리쟈통(李家同)은 현재 지난(暨南)、칭화(清華)、징이(靜宜) 대학교 명예교수이며, 그 가 쓴 이 글은 2009년8월4일에 타이완의 유력일간지 聯合報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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