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C 소식지

에니어그램과 영화

HOME - KEEC 소식지 - 에니어그램과 영화
영화속에 흐르는 에니어그램의 정점 “지금 여기에...,” 1 (한진주) 글쓴이 : KEEC   2012-08-27 13:15

이 글은 한진주(진주심리상담원장)가 '에니어그램연구' 제 1권 2호. 한국에니어그램학회 에 게제한 글입니다. pp.125-138. 2004.

1. 서문; 들어가는 이야기

해마다 오는 가을이지만 이번 가을이 나에게 유난히 더 특별한 것은 아마도 지금 여기에 가장 가까이 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껏 에니어그램을 공부해 오면서 더욱 더 주변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머물 수 있는 경험이 생겨났기 때문이리라.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바로 통합, 전체(wholeness)가 되어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이 전체의식 속에서 삶의 순간들을 맞이하고 다시 나누며 더 큰 전체를 향한 끝없는 나아감의 자리에 있기 위하여 오늘도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껏 에니어그램을 공부해 오면서 각 유형별 연구와 분석들을 거치고,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면서 더 넓어진 이해와 성숙된 자신을 만들어 올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에니어그램의 학습 과정을 지나 삶의 과정인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에니어그램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여기”를 화두로 삼아 영화속에 흐르는 에니어그램의 정점을 관찰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이 에니어그램의 정점 “지금 여기”를 다시 Crystal point 라고도 부른다. 수많은 변화의 과정인 Turning point를 거쳐 비로소 도착하는 자리, Crystal point,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는 결정형의 무색투명함, 이 명료한 석영으로서의 원래 모습은 순수와 높은 정신의 상징으로, 그 속에 완벽한 우주가 자리 잡고 있다고 믿어,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 표준이 되어지기도 하였다.

우리가 여기에서 그 수정의 결정(Crystal point)을 에니어그램의 정점, “지금 여기에...” 와 비유할 수 있는 것은 수정 역시 고도의 결정체로 탄생했다는 점이 에니어그램 속에서의 “지금 여기”라는 고도의 결정체와 뜻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 정점, 그 결정의 자리, 그 자리를 영화라는 채널을 통하여 바라보면서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 하며, 영상도 보고, 그 기운을 느끼고 나누어보려고 한다. 물론 에니어그램의 정점, “here & now” 는 인간사 어디에나 존재하고, 흐르고 있지만, 그중에 하나 영화속 순간순간에 들어있는 정점 “지금 여기”를 관찰하고, 바라보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별한 지혜의 혜택이기도하다. 그리고 일단 우리가 지금은 그 영화 밖에 있기 때문에 그 내용들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우리들의 삶이 한편의 영화처럼 흘러갈 때 우리는 그 속에서 다시 영화를 보듯 우리의 삶을 관조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지금 여기에 100으로 있을 수 있는 소중한 명상적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본질적 욕망이 있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고 싶어 하는 욕망, 자기의 진수(본질)로 살고 싶은 욕망, 그 진수의 자리에서 또 영원하고 싶은 욕망, 부분이 아닌 전체로 살고 싶은 욕망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내제된 항상성 즉, 영원을 사모하는 신성의 본질의 의한 것으로 그 본질의 욕망을 어떻게 나의 삶속에서 이루고, 현상화시키고, 또 경험할 수 있을까? 그 의문에 한 발작 다가선 희망을 가지고 오늘 우리 함께 영화속으로 길을 떠나보자.

이제 우리 에니어그램의 정점에서 만나지는 이 특별한 가을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영화 속 그들의 염원을 들여다보자. Before sun rising, Before sun set. Groundhog Day, 50 First Dates,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등... 그 속에서 그들이 그 순간에 전체로 있고 싶어 하는 염원은 과연 무엇으로 이룰 수 있을까?

위와 같이 오늘 여기서 함께 나누고 싶은 영화와 주제는 반복적 일상에서 오는 지루함을 어떻게 해서라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의도된 열망의 모습들이다. 그 안에는 자신도 알지 못하지만 지금 여기에 100(전체)이 되고 싶은 본질적 욕망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 전체가 되어 “지금 여기”에 온전히 100으로 있을 때, 그때는 욕망의 번득임보다 사랑의 이완이 더 크게 느껴져 진실로 아름다운 본질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는 신성한 아이디어가 들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첫 키스만 50번-50 First Dates, 해뜨기 전-Before sun rising 등의 영화속에서는 그냥 무심코 지나가는 시간들을 정말로 간절히 아쉬워하며, 그 순간 전체로 있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염원들이 들어 있음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스치고 지나가지만 않는다면,


자, 이제 우리 한 가지만 동의 하고 넘어가자. 혹시 우리가 영화나 작품들을 볼 때, 우리의 에고 의식으로 곁눈질하고 있지는 않는지 먼저 살펴볼 일이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단단한 신념의 체제는 진정한 경험만으로 수정될 수 있듯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변형되지 않고, 변화되기를 싫어하며, 왜곡된 자의식의 표출과, 전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면의 어떤 것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나만의 필요, 소유, 나눔, 비판, 제한, 분노, 갈등, 인위적 단단함 등의 에고적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아보자.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온전히 전체를 경험할 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시작해 보자. 에고는 전체를 느낄 수 없기에 끝없이 번민하고 방황하지만, 그 방황의 결국도 알아감이니 에고의 성함은 그만큼 본질의 소리에 애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은 잠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 함께 에고의 변형을 허락해보자.

다음 호에 본론으로 계속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