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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에니어그램 : 왕의 남자(2) 글쓴이 : KEEC   2018-05-2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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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에니어그램 : 왕의 남자(2)

왕의 남자 : King And The Clown, 2005
- 맹인 소극(笑劇) -
Main Themes: Clown, Fool, King, Play, 1:1.

이 영화에서 장생, 공길, 연산, 장녹수은 에니어그램의 모습 중에 생존본능을 사적이고 일대일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성적(개인적) 하위 유형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따라서 그들은 보통 힘이 있고, 경쟁적이며, 집중적이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거나 적어도 관심을 받는 데 열중한다. 성적 하위 유형은 친근함을 추구한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할 하나의 대상을 찾아다니며, 사랑할 대상, 영혼의 반려자를 갈구한다. 그들의 삶의 이슈는 친근감이고 관계 속에서의 연결에 대해 매달린다. 이들에게는 삶 속에서 에너지의 강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무엇을 내가 하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이러한 이들의 생존의 전략은 자기의 본능을 억누르는 금욕과 발산하는 난교이다.

이러한 성적·개인적 하위 본능으로 살아가는 인간을 규정함에 있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용어와 만나게 된다.
Homo Ludens, 유희의 인간.
인간이란 존재를 규정함에 있어 사회과학에서는 '생각하는 동물'로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사회적·정치적인 동물'로서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 '도구를 사용하는 제작적 동물'로서 '호모 파베르(Homo Faber)', '직립 보행 혹은 의사 소통의 동물'로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유희하는 동물'로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네덜란드 문화학자인 호이징가는 이성과 사유가 아닌, 놀이나 유희가 인간의 문화를 형성해 왔으며, 놀이나 유희로 인해 인간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의 인간이라 불렀다. 호이징가는 우리가 오랫동안 문화에 있어서 놀이가 갖는 중요성을 간과해 왔다고 말하며, 사실, '놀 수 있다'는 것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생존을 위한 움직임은 기계적 물리법칙을 따르는 것일 뿐 이지만, '놀이'를 한다는 것은 물리법칙을 벗어난 그 이상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삶의 의미는 '놀이함'에서 나온다. 생존을 쫓아서 살아 간다는 점에 있어서 인간은 여타의 다른 생물들과 다를 바 없다. 생존의 사슬로부터 벗어나 여가를 갖고 놀이할 때, 비로소 인간 삶의 독특한 의미가 생겨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문화는 놀이로부터 나왔으며, 또한 '놀아지는' 것이다(김성곤).

이러한 삶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중 1:1의 강렬함을 원하는 성적 하위본능은 호모 루덴스의 모습과 같으며 동물적 인간이 보다 높은 경지를 향해 나아가려는 모습을 대변한다.